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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막부가 조선 국왕에 보낸 ’외교 선물’ <부용안도병풍(芙蓉雁圖屛風)>

신수희

에도 막부가 조선 국왕에 보낸 ’외교 선물’ <부용안도병풍(芙蓉雁圖屛風)>

국립고궁박물관에는 화면 대부분이 금박으로 뒤덮인 일본의 <부용안도병풍(芙蓉雁圖屛風)>(1748년)이 소장되어 있다. 이 6폭 병풍 한 쌍은 에도 시대 중기에 활동한 가노파(狩野派)의 화가 가노유호 야스노부(狩野友甫宴信, ?~1761, 1762)에 의해 제작된 작품으로 부용꽃이 활짝 핀 논밭에 기러기가 날아드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가노가(狩野家) 가노 안센(狩野安仙)의 양자였던 가노유호 야스노부는 어용화가 집단인 가노파의 장식적인 화풍을 이어받아, 작품에서 화면의 대부분을 금빛 안개와 구름으로 뒤덮고 짙은 채색을 사용하여 부용꽃과 기러기를 공필(工筆)로 섬세하게 그림으로써 에도 막부의 취향에 맞는 전형적인 가노파의 장식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의 병풍과 사뭇 다른 금박을 사용하여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가노파 화가의 <부용안도병풍>이 어떻게 조선 후기 궁중에 유입되었을까? 

조선 후기에 이르면 궁중에서 우리나라 작품뿐 아니라 중국 및 일본 회화 작품들을 종종 접할 수 있을 정도로 대외교류가 활발해졌다. 이는 18세기 중반 이후에 문금(門禁) 조치가 완화된 연행(燕行)과 유학을 근간으로 한 문화교류가 증가했던 통신사행(通信使行)에 기인한다. 통신사행의 경우 일본의 황실과 다이묘(大名), 지방 사원의 주지(住持) 등으로부터 일본의 많은 회화 작품이 유입되었다. 특히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 조선에 유입된 일본 회화 관련 기록이 여러 차례 확인되는데, 아쉽게도 현전하는 작품들은 극히 적다. 이에 <부용안도병풍>은 조선 후기 궁중에 유입되고 소용되었던 일본의 금박병풍으로 한일 회화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부용안도병풍>은 1748년 도쿠가와 이에시게(德川家重, 1712~1761)의 습직(襲職)을 축하하기 위해 정사 홍계희(洪啓禧), 부사 남태기(南泰耆), 종사관 조명채(曺命采) 등 통신사 일행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도쿠가와 막부(幕府)의 명을 받은 가노유호 야스노부에 의해 제작되어 영조(英祖, 1694~1776)에게 헌납되었다. 이는 각 병풍의 제1폭 상단에 있는 영조의 어제시(御製詩)와도 일치하는데, 어제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노유호 야스노부(狩野友甫宴信), 부용안도병풍(芙蓉雁圖屛風), 1748년, 비단에 금박과 채색, 180.5 × 384cm,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임금이 짓고 글씨를 쓰다 
전 가운데 두 개의 병풍은 
석년부터 전해 오던 것이네 
오늘날에야 여기에서 펼치니 
우연이라 어찌 감히 말하랴 
신미년(1751) 봄에

임금이 짓고 글씨를 쓰다 
이 병풍 어느 때에 얻었던가 
내가 곧 석년에 받은 것이네 
원손전 안에 펼쳐 
이제 보니 감회 먼저 일어나네 
신미년(1751) 봄에

어제시의 내용을 통해 <부용안도병풍> 한 쌍이 영조대에 궁중에 들어와 1751년 당시 정조(正祖, 1752~1800)의 동복형 의소세손(懿昭世孫, 1750~1752)이 지내던 원손전(元孫殿)의 한 칸을 장식하는데 소용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에도 막부의 취향에 맞는 가노파 화가의 <부용안도병풍>은 외교 선물로 조선 국왕에게 전해짐으로써 조선 후기 궁중에서 소용되었다. 특히 영조의 어제시가 있는 <부용안도병풍>은 궁정의 어느 전각에 배치하고 감상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있는 작품으로 더욱 의미가 있다. 

[요약]
朝鮮後期の宮中では対外交流が盛んで、韓国の絵画だけでなく中国や日本の絵画に接することもあった。日本の皇室や大名、地方寺院の住持等は、通信使のような公的な経路を通して、朝鮮に多くの絵画作品を伝えた。『朝鮮王朝実録』にも、朝鮮に流入した数多くの日本絵画関連の記録が確認されている。しかし、残念ながら現存する作品は極めて少ない。故に、朝鮮後期に日本から朝鮮王室に贈られ、現在、国立古宮博物館に所蔵される一対の<芙蓉雁図屛風>は、 朝鮮と日本の絵画交流を示す重要な資料である。
<芙蓉雁図屛風>は江戸時代中期に活動した狩野派の絵師、狩野友甫宴信 が制作した金箔屏風だ。狩野派のひとり、狩野安仙の養子であった狩野友甫宴信は、御用画家集団である狩野派の装飾的な画風を引き継いだ。狩野友甫宴信は、<芙蓉雁図屛風>において、画面の大部分を占める金色の霧と雲の上に濃い彩色を用い、芙蓉花と雁を工筆で繊細に描くことで、狩野派の典型的な装飾性を示している。では、このように華麗さの極致を見せている 狩野派絵師による<芙蓉雁図屛風>が、どのように朝鮮後期の宮中に流入したのだろうか。
<芙蓉雁図屛風>は1748年、徳川家重の襲職を祝うために、正使·洪啓禧、副使·南泰耆、従事官·曺命采 などの通信使一行が来日した際、徳川幕府の命を受けた狩野友甫宴信により制作され、英祖に献納された。こうして<芙蓉雁図屛風>は1751年、正祖の同服兄である懿昭世孫が過ごした元孫殿の一間を飾ることとなった。

[참고문헌]
국립고궁박물관 편, 『궁중서화』, 국립고궁박물관, 2012
이미림 외, 『동양미술사』 下, 미진사, 2007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 궁궐의 그림』, 돌베개, 2012
황은영, 「18세기 중반 이후 통신사행 회화 자료의 특성」, 『한일관계사연구』 70, 한일관계사학회, pp.77-125. 

신수희 se0126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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